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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기 통장 대여 가담자의 책임(ip: 115.138.39.13)

  • 김이지나
  • 2026-10-04
  • 1
금융사기 사건을 들여다보면 직접 사람을 속인 조직원 말고도 통장이나 체크카드를 넘겨준 사람, 계좌로 들어온 돈을 찾아 전달한 사람이 함께 수사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상당수는 자신도 속았다고 말한다. 대출을 받게 해 주겠다는 말, 거래 실적을 쌓아 주겠다는 말, 고수익 아르바이트라는 말을 믿고 넘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은 이들을 단순한 피해자로만 보지 않는다.
통장이나 체크카드, 인증서 같은 접근 매체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행위는 그 자체로 금지되어 있다. 대가를 받았거나 대가를 약속받고 넘겼다면 처벌 대상이 되며, 대출을 받기 위해서였다는 사정도 대가로 평가될 수 있다. 범죄에 쓰일 줄 몰랐다는 주장과 상관없이 접근 매체를 넘긴 행위만으로 책임이 생긴다는 점을 먼저 알아야 한다.
여기에 더해 사기의 방조범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자신이 넘긴 통장이 사기 피해금을 받는 데 쓰였고, 그런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면 범행을 도운 것으로 본다. 확실히 알지 못했더라도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넘겼다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
수사기관은 넘긴 경위를 꼼꼼히 따진다. 처음 연락이 온 경로가 무엇이었는지, 상대가 누구라고 소개했는지, 왜 통장이 필요하다고 했는지, 넘기면서 무엇을 받기로 했는지를 묻는다. 정상적인 금융회사라면 대출을 위해 통장이나 카드를 달라고 하지 않는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이런 요구를 받고도 응했다면 의심했어야 한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
돈을 찾아 전달하는 역할은 더 무겁게 평가된다. 계좌에 들어온 돈을 인출해 지정된 사람에게 건네거나 다른 계좌로 보내는 일은 피해금을 조직에 넘기는 핵심 행위다. 채권 회수나 환전 업무라고 들었다 해도, 모르는 사람의 돈을 현금으로 찾아 낯선 사람에게 건네는 일은 정상적인 업무로 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가담자가 같은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판단에서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정도다. 상대가 실제 금융회사 직원인 것처럼 정교하게 꾸몄는지, 넘긴 뒤 곧바로 이상함을 느끼고 신고했는지, 받은 대가가 있었는지, 비슷한 일을 반복했는지가 모두 고려된다. 이상하다고 느낀 즉시 은행에 연락해 계좌를 정지시켰다면 유리한 사정이 된다.
조사를 받게 되었다면 처음 연락부터 통장을 넘기기까지의 대화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상대가 보낸 메시지, 받은 서류, 통화 기록, 상대가 소개한 회사 이름과 연락처가 자신이 속았다는 점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된다. 대화를 지웠다면 휴대전화 복구를 검토할 필요도 있다.
진술에서는 일관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처음에는 몰랐다고 했다가 조사가 진행되며 말이 바뀌면 전체 진술의 신빙성이 무너진다.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추측하지 말고 모른다고 답하는 편이 낫다. 다만 이상하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면 숨기기보다 솔직하게 말하고 그 뒤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오히려 신뢰를 얻는다.
피해자와의 관계도 정리해야 한다. 자신의 계좌로 피해금이 들어왔다면 그 피해자는 계좌 명의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형사 절차에서 처벌을 줄이기 위해서도, 민사 책임을 정리하기 위해서도 피해자와의 합의는 중요한 과제다. 피해 금액 전부를 감당하기 어렵더라도 자신이 관여한 범위에서 성의를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계좌 명의인이 겪는 불이익은 형사 처벌만이 아니다. 계좌가 사기에 이용된 것으로 확인되면 일정 기간 새 계좌를 만들기 어렵고, 비대면 금융 거래가 제한되는 등 금융 생활 전반에 불편이 따른다. 신용 거래에도 영향이 갈 수 있다.
이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몇 가지 원칙만 기억하면 된다. 어떤 이유로든 통장, 체크카드, 인증서, 비밀번호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는다. 대출을 받으려면 먼저 돈이나 통장을 달라는 곳은 상대하지 않는다. 계좌로 들어온 돈을 찾아 전달하는 일은 어떤 명목이든 거절한다.
특히 사회 경험이 적은 청년층이나 급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이 표적이 되기 쉽다. 구인 사이트나 메신저로 들어온 손쉬운 일자리 제안은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고, 업무 내용이 계좌 관리나 현금 전달이라면 즉시 거절해야 한다.
가담자에게 돌아오는 민사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피해자가 계좌 명의인을 상대로 소송을 내면 법원은 명의인이 통장을 넘기면서 범죄에 쓰일 가능성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는지를 따져 배상 책임을 정한다. 형사 절차에서 처벌을 피했다고 해서 민사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두 절차를 함께 고려해 대응해야 한다.
금융사기 가담 혐의를 받았다면 혼자 해명하려 하기보다 조사 전에 전문가와 함께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넘긴 경위와 인식의 정도를 객관적인 자료로 보여 줄 수 있느냐가 결과를 가르기 때문이다.
이미 통장을 넘긴 뒤 이상함을 느꼈다면 지금이라도 은행에 연락해 계좌를 정지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가장 빠른 대응이다. 스스로 먼저 신고한 사실은 나중에 고의가 없었다는 점을 보여 주는 중요한 정황이 된다. 신고 이후에는 수사기관의 연락을 피하지 말고 성실히 출석해 경위를 설명해야 한다. 연락을 피하면 도주 우려가 있다는 판단을 받을 수 있고, 처음에는 참고인으로 조사받을 수 있었던 사람이 피의자로 바뀌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자신이 속은 부분과 잘못한 부분을 나누어 솔직하게 설명하는 태도가 결국 가장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 가족에게도 이런 수법을 알려 두면 같은 함정에 빠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