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준비하면서 뒤늦게 배우자가 진 빚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생활비나 자녀 교육을 위해 쓴 것이라는데, 그 빚을 자신도 갚아야 하는 것인지 몰라 불안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부부가 함께 사는 동안 진 빚을 두고 누가 어디까지 책임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혼변호사로서 이 상담을 받을 때 먼저 구분해 드리는 것이, 부부 사이 재산분할에서의 채무 정산과 제삼자에 대한 연대책임은 다른 문제라는 점입니다.
우리 법은 부부가 일상적인 가사에 관해서는 서로를 대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일상가사대리권이라고 합니다. 부부 공동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통상적인 거래, 예컨대 생활용품 구입이나 일상적인 비용 지출 같은 것은 한쪽이 하더라도 부부가 함께 한 것으로 다루어집니다. 그리고 이런 일상가사로 생긴 빚에 대해서는 부부가 함께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한쪽이 진 빚이라도 상대방이 연대해 갚아야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여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연대책임이 인정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상적인 가사의 범위에 드는 채무에 한합니다. 부부 공동생활과 무관하게 한쪽이 개인적으로 사업 자금을 빌리거나, 도박이나 개인적 소비를 위해 진 빚, 통상의 가사 범위를 크게 벗어나는 큰 거래는 일상가사로 보기 어렵습니다. 이런 채무는 그것을 진 배우자 개인의 책임이지, 상대방이 연대해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문제가 된 빚이 어떤 성격인지를 가리는 것이 책임 범위를 정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이 구분은 이혼 국면에서 특히 중요해집니다. 부부 사이의 재산분할에서는 함께 이룬 재산뿐 아니라 함께 진 빚도 청산의 대상이 됩니다. 혼인 생활을 위해 생긴 채무라면 재산에서 이를 공제하거나 분담하는 방식으로 정산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부부 사이에서 어떻게 나눌지의 문제입니다. 돈을 빌려준 채권자에 대한 관계는 별개여서, 그 채권자에게 누가 책임지는지는 일상가사채무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따라 정해집니다. 부부끼리 정산했다고 채권자에 대한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에서 자주 벌어지는 다툼이 있습니다. 이혼하면서 빚은 그것을 진 사람이 갚기로 합의했는데, 채권자가 다른 배우자에게 갚으라고 청구하는 경우입니다. 부부 사이의 합의는 두 사람을 구속할 뿐, 그 합의로 채권자의 권리를 마음대로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 빚이 일상가사의 범위에 드는 것이라면 채권자는 여전히 상대 배우자에게도 청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서 누가 갚기로 했는지와, 채권자가 누구에게 청구할 수 있는지는 서로 다른 층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혼 시 채무를 정리할 때는 부부 사이의 분담만이 아니라 채권자에 대한 관계까지 함께 살펴야 합니다.
자신을 지키려면 혼인 기간에 생긴 빚의 실체를 파악해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배우자 명의로 어떤 채무가 얼마나 있는지, 그 돈이 무엇에 쓰였는지를 확인해 두면 이혼 정산에서 부당하게 떠안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실제로는 개인적 용도로 쓴 빚을 생활비였다고 주장하며 함께 갚자고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채무의 사용처를 보여주는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빚의 성격을 다투는 것은 결국 자료의 문제입니다.
정리하면, 부부가 함께 사는 동안 생긴 빚이라고 해서 무조건 함께 갚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내 명의가 아니라고 해서 무조건 남의 일인 것도 아닙니다. 일상가사에 해당하는지, 부부 사이에서 어떻게 정산할지, 채권자에 대해 누가 책임지는지를 층층이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이혼변호사의 조력을 받으면 문제가 된 채무의 성격을 가리고, 부부 사이 정산과 제삼자에 대한 책임을 구분해 대응 전략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혼은 재산을 나누는 일이면서 동시에 빚을 정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재산에만 눈을 두고 빚을 소홀히 다루면, 이혼 후에 예상치 못한 청구서를 받아 들게 될 수 있습니다. 함께한 시간에 쌓인 것이 재산만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고, 빚의 문제까지 분명히 정리한 뒤에 새 출발을 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빚이 누구의 몫인지 분명히 해 두는 것이 홀가분한 시작의 조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