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분반환청구소송 의 간병이 끝나서 다행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스위스 안락사’ 모임 이후 어머니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대학병원 외래 진료에서 담당 교수는 호스피스를 권했다. 교수의 권유를 들은 후 완화의료 상담실을 찾아 호스피스 병동 전원을 알아보았지만, 당장 입원할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김씨는 호스피스로 가는 일이 이렇게까지 어려운 줄은 미처 몰랐다고 했다.
한 병원에서 우선 일반 병실에 입원한 뒤 자리가 나면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고, 그곳으로 어머니를 옮겼다. 전원 이후 어머니의 통증은 극심해졌다. 의료진이 여러 방법을 시도했음에도 어머니의 통증은 완화되지 않았다. 일주일쯤 지나자 섬망 증상까지 나타났고, 어머니는 고통스러운 듯 계속 몸을 비틀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때 김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켜보며 마약성 진통제 투여 버튼을 재빨리 누르는 것뿐이었다. 어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